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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 몰락 가속화] 초·중·고 교부금 81조원, 돈 남아도는데…대학은 14년째 등록금 동결, 연구비 깎아
입력2022.10.08. 오전 1:09
초·중·고는 81조원. 대학교는 0원. 무슨 말인가.
81조원은 올해 교육교부금 전망치다. 당초 295조원으로 예상됐던 내국세가 55조8000억원 더 걷혔다. 내국세 수입 20.79%를 무조건 지방교육청에 교부금으로 지급해야 하므로 올해 교부금은 지난해보다 21조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교부금은 교육청에서 초·중·고를 위해 쓰는 예산이니 교육부에서 관리하는 대학에는 한 푼도 안 간다. 대학 현장에서 “세금으로 초등학교 화장실은 고칠 수 있어도 공대 실험 실습 장비는 살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등학생보다 적은 나라다. 지난 2일 발표된 OECD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1287달러로 OECD 평균(1만7559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전년보다 6% 늘어난 1만3341달러로 OECD 평균(9923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중·고등학생 공교육비 역시 1만7078달러로 OECD 평균(1만1400달러)보다 높다.
게다가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연구비마저 삭감하고 있는 대학이 부지기수다. 특히 신입생이 줄어드는 지역 대학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 사립 지역대학의 관계자 정모씨는 “올해 수십억원의 적자가 예상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등록금 동결 대열에 합류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매년 법정 등록금 인상 상한선을 정해 발표한다. 2022학년도 상한선은 1.65%로 고시했다. 하지만 정씨를 비롯한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장학금이 줄면 대학에서 자체 재원으로 메꾸거나, 장학금 비율이 낮아져 정부의 재정지원사업과 각종 대학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지방의 한 국립대 관계자 김모씨는 “교육부는 각 학교의 재정 상황을 일일이 고려해주지 않는다”며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등록금을 동결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땜질 처방만 계속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교육 재정을 고등교육에 쓰지 못하는 이유는 1972년 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규정 때문이다. 지금보다 신생아는 많은데 교육 인프라는 부족했던 과거에는 이 법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초·중·고 학생 수가 2013년 657만 명에서 올해 532만 명으로 감소하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 625만원이던 1인당 교부금도 올해 1528만원으로 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7만명, 교직원 1만7000여명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기 위해 올해 예산 600억원을 편성했다. 돈이 넘쳐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에도 교육교부금 투자 가능토록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교육교부금 제도는 과거 교육 인프라가 좋지 않았던 때에 유지했던 아주 예외적인 제도”라며 “가장 이상적인 것은 매년 필요한 교원이나 아동수 등 교육수요에 맞게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런 불균형 해소를 위해 대학에도 교육교부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교부금 가운데 3조6000억원을 차지하는 교육세를 대학 지원과 평생교육 등 고등교육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 예산을 실제 수요와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내국세 연동제 방식은 그대로 둔 채 당장 사용처만 늘리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교육계의 반대가 거세다.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교육교부금의 고등교육 전용’ 방침을 내놓자 교사노조연맹이 “교육복지 확대 필요성을 망각한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개편안이 나오자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은 지난 6일 울산에 모여 “유·초·중등교육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고려한다면 교부금 개편 조치는 근시안적 접근”이라고 반발했다. 건축한 지 40년 지난 초·중등학교 노후건물이 전국에 8000동에 이르고, 12년 이상 사용한 냉난방기, 화장실 등을 개선하려면 예산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중·고 예산이 남으니 대학이 교부금을 뺏어간다는 식으로 바라보면 갈등만 커질 뿐”이라며 “교부금 제도가 문제면 개선하고, 대학 재원을 위한 별도의 법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철 교수는 “재정 배분 시스템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조차 못하면 안 된다”며 “교부율을 재계산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만큼 대학의 자기혁신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대학이 지역사회의 교육 수요를 찾아내고, 일자리를 연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졸업생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대비해 해외 유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등의 혁신도 필요하다”며 “이런 노력을 수반해야 정부의 지원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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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있었네요균형있게 바뀌어야할듯2022.10.08. 06: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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