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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지음

notaram 2023. 4. 1. 23:41


중앙SUNDAY
클레오파트라 위한 선물은 책 20만권
입력2023.04.01. 오전 12:33

갈대 속의 영원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반비

소리 없이 눈으로 책을 읽는 건, 현대인의 흔한 독서 방식이다. 한데 4세기 『고백록』의 저자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난생처음 보는 모습, 기록에 남길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당시 책이란 스스로 읽든 남이 읽어주든 큰 소리로 읽는 것이었고, 독서란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대개 공개적 행위였다.

고대 그리스·로마를 중심으로 책의 역사를 다룬 이 책 『갈대 속의 영원』에는 지금과 사뭇 다른 독서의 풍경 역시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두루마리 책은 두루마리를 한 손으로 펴고, 다른 손으로 말면서 읽어야 했는데 길이가 40m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책장을 넘기는 것부터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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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집트박물관이 전시 중인 파피루스. 사진은 전체 16m 길이 중 일부다. [AP=연합뉴스]
스페인 출신으로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을 저 유명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얘기로 시작한다. 이 도서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의 모든 책을 모으려 했는데, 저자는 왕명으로 거금을 들고 말을 달렸던 책 사냥꾼에 대한 상상력 섞인 묘사로 시작해 파피루스와 양피지와 코덱스의 등장, 암기과 구전의 시대에서 문자 시대로의 전환, 헬레니즘 시대 번역의 기여 등 역사적 흐름과 그 의미를 고루 펼쳐낸다.

눈에 띄는 건 문체와 전개 방식이다. 이 책은 각주가 잔뜩 달린 역사책이 아니라 감각적 표현이 이어지는 에세이에 가깝다. 특정 정보를 골라 읽기는 힘든 구성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혹하고 책에 대한 생각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용맹한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가 전장에서 챙긴 것이 금은보화가 아니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든가, 부족한 것 없고 지성은 충만한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안토니우스가 준비한 선물이 책 20만권이라든가, 금욕주의 철학자가 실은 개인 필경사로 일하는 노예들까지 거느린 부자였다든가 하는 것은 이 책이 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일부일 따름이다.

현대와 고대를 아울러 도서관과 책을 불태우고 검열한 얘기도 여럿 나온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쓴 이후 소득세 신고서에 직업을 ‘작가’라고 적었다든가, 문화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이 일찍이 서점을 운영하며 혁명 자금을 충당했다든가 하는 대목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고대의 책은 물론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처럼 ‘책에 대한 책’을 비롯해 현대 작가의 책이나 영화 역시 다양하게 소개하고 인용한다. 이를 통해 이 책이 전하는 책 이야기의 현재성이 부각된다.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 에서 상상한, 육면체 방이 무한히 반복되는 도서관은 지금 시대 인터넷에 대한 예견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문자로 인해 사람들이 숙고를 덜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리라 우려했던 것 역시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의 기억 메커니즘이 바뀌는 지금의 상황과도 통한다. 저자는 “알파벳은 인터넷보다 더 혁명적인 기술이었다”며 문자 중에도 표음문자가 추상적 사유에 기여한 점 역시 강조한다.

사이사이 저자는 개인적 경험도 들려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준 일은 문자 시대에도 이어지는 구전의 전통을, 아버지와 함께 서점에서 표지는 『돈키호테』인데 안쪽은 자본론』

책을 발견한 일은 검열의 역사와 이를 버텨낸 책들의 힘을 환기한다. 실은 학창 시절 집단 따돌림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저자에게 힘이 되어준 것 역시 책이었다.

책의 역사를 담은 책이자, 책의 찬가로도 읽히는 책이다. “인간이 창안한 다양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나머지는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며,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사뭇 다르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저자가 본문에 인용한 보르헤스의 말이다. 원제 El infinito en un junco.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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