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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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벽돌책] 추리소설 말고 ‘범죄소설’로 불러달라
입력2023.03.18. 오전 3:03
한국 추리소설 걸작선 1·2
책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 추리소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몇몇 이유를 들어 SF나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읽지 않는다는 독서가는 봤지만 추리소설을 피한다는 이는 못 봤다. 애서가들의 독서 편력을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어릴 적 읽었던 셜록 홈스 시리즈를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보다 ‘범죄소설’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탐정소설, 형사소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이유가 같다. 탐정, 형사, 혹은 ‘추리’가 나오지 않아도 훌륭한 범죄소설이 있으니. 범인 찾기, 트릭 풀기에서 눈을 돌리면 감상 폭이 더 넓어지는 작품도 많다. 범죄는 강렬한 드라마를 일으키며, 늘 얼마간은 사회적 요소를 품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추리소설 걸작선’ 1·2권을 읽는 일은 이중으로 즐거웠다. 수수께끼 풀이의 쾌감, 한국 추리 문학의 계보와 선배 작가들의 분투를 발견하며 얻는 감흥도 물론 컸다. 동시에 한국 사회의 모습과 한국인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독서도 흥미진진했다. 해외 범죄소설, 혹은 어느 작가의 단독 단행본을 읽으면서는 얻지 못했을 재미다.
전체 1484쪽 분량인 책 두 권에 단편소설이 모두 44편 실려 있다. 국경 밖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신나게 펼치는 작품도 있지만, 역시 한국의 범죄에 눈길이 간다. 김성종의 ‘회색의 벼랑’은 냉전 시대를, 서미애의 ‘반가운 살인자’는 외환 위기 이후 파괴된 가정 풍경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을 소재로 한 한이의 ‘체류’, 갑질 문제를 다룬 송시우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진지하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상당수 작품이 아내의 불륜에 대한 가부장의 분노(혹은 공포)를 다룬다는 점은 흥미로운 분석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그 순간의 독특하게 습하고 탁한 분위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2012년에 나온 선집이라 네이버와 미다졸람은 나오지만 소셜미디어와 펜타닐은 아직 언급이 없다. 언젠가 3권이 나온다면 2020년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범죄로 어떤 것이 등장할지 상상해본다. 소재가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장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