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혼자 공부(혼공)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양육자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은 아이와 양육자 간의 신뢰가 있어야 길러진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신종호 서울대 교수의 수업은 언제나 인기가 높다. 그는 "학습은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에서 시작된다"며 "아이와 양육자가 서로를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신 교수는 서울대에서 ‘교육 심리’를 주제로 20년간 강의해 온 전문가다. 공부할 때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해왔다. 즐겁게,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는다.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선 ‘광클 교수’로 불린다. 그의 수업이 ‘빛’의 속도로 ‘클릭’해야만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울대생들의 엉덩이 힘 공부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어떤 훌륭한 공부법도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이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학습 습관을 기르기까지는 양육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아이와 양육자,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혼공 조건1.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가 먼저다. 아이의 공부와 신뢰 관계,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초등 시절을 되돌아보죠. 처음부터 혼자 공부하셨나요?
글자 읽기, 수읽기 등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학습은 걷기와 같아서 처음에는 손잡아주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가장 가까운 양육자가 그 역할을 해야 하고요. 마라토너가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도록 경기장 밖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인 셈이죠. 그런데 선수와 페이스메이커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그 경기는 엉망이 됩니다. 아이의 혼공 습관이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건 그래서예요.
신뢰를 쌓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 원칙은 간단합니다. 경험을 공유하는 겁니다. 자기 주도성은 사회적 협력에서 시작하거든요. 우선 아이와 함께 책상 앞에 앉으세요. 그리고 책을 펴고 같이 공부하세요. 혼자 할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양육자와 함께한 경험이 있습니다. 함께 책 읽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여행하는 등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늘 양육자가 함께합니다. 그러다가 혼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틉니다. 양육자는 아이가 혼자 해보겠다고 할 때, 서서히 손을 떼면 됩니다.
하지만 학습을 유독 거부하는 아이가 있어요. 달래고 얼러서 책상 앞에 앉혀놔도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데요. 공부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닐까요?학습은 호기심에서 시작합니다. 호기심 없는 아이는 없어요. 학습에 대한 부담 때문에 회피하는 겁니다. 이럴 땐 성공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자기효능감’을 키워줘야 합니다. 저는 하루 한 가지 계획 실천하기를 추천하는데요. 하루 3페이지 책 읽기 등 작고 쉬운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때 양육자는 “숙제는 언제 시작할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라는 식으로 계획을 구체화해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세요. 점검도 필요합니다.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지 말고, “어렵지는 않았니?”, “무엇이 가장 힘들었니?” 등으로 개선점을 찾아주세요. 이렇게 성공 경험이 쌓이면 재미가 생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찾아 나설 겁니다.
2018년 방영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왼쪽)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사진 JTBC]그런데 아이 공부하는 걸 보면 답답해요. 그러다 보니 자꾸 다그치게 되고, 감정싸움 하게 되고요. 조급하니까요. 걷기도 전에 뛰라고 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지식을 익히는 과정은 누구나 어렵고, 시간이 걸립니다. 이제 막 학습을 시작한 아이가 받는 압박은 더 크겠죠. 그래서 아이의 심리적 부담을 이해하고,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 아이의 결정력과 상황 통제력을 믿고, 기회를 주세요. 예를 들어 참고서를 사고, 학원을 선택하는 일 등이요. 학습의 주도권을 쥐면, 공부는 내 일이 됩니다. 공부에 책임감이 생긴다는 얘기예요. 이렇게 아이의 생각과 결정, 경험을 인정하면 아이도 양육자를 믿게 됩니다.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겠는데요.양육자는 늘 성찰해야 합니다. 성적을 우선하는 ‘학부모’인지, 아이를 우선하는 ‘부모’인지 돌아보세요. 성적에만 집착하면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양육자가 원하는 걸 아이에게 요구합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영재 가족(배우 김정난 가족)이 그랬죠. 아들이 의대에 갔지만, 그건 부모의 바람이었어요. 결국 아들은 가출하고, 가족은 해체되죠. 허구가 아닙니다. 흔히 아이와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에 대한 질문부터 나옵니다. “진도 나갔니?”, “다 이해되니?” 라고요. 이러면 아이는 자신이 공부로만 평가받는다고 생각해 공부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아이의 일상과 마음에 관심을 가지세요. 오늘 기분, 학교생활 등을 서로 물어보며 관계를 쌓으세요. 그러면 아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합니다. 양육자는 필요하다는 걸 도와주면 되고요. 스스로 학습은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혼공 조건 2. 공부에도 목표가 필요하다.
두 번째 조건은 공부 목표다. 어떤 일이든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공부도 그렇다. 공부해야 하는 타당성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다. 반면 이루고 싶은 일, 꿈이 있다면 끝까지 완주할 힘이 생긴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주도성은 가야 할 방향을 알 때 생긴다”며 “아이가 공부 목표 없이 ‘보여주기식’ 공부를 하는 건 아닌지부터 점검해보자”고 했다.
보여주기식 공부란 뭘까요?평가와 평판을 위한 공부요. 서울대 입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를 왜 하는가’를 물었더니 10~20%는 “좋은 대학 다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답했어요. 남을 위한 공부를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답한 학생들은 뒤늦게 사춘기를 겪습니다. 서울대에 오긴 왔는데, ‘내가 여기 왜 왔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서울대는 최종 목표가 아니에요. 핵심은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왜 할 것이냐입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있어야 해요.
목표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제가 말하는 최종 목표란 ‘하고 싶은 일’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양육자는 평소 아이의 관심사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몰입할 기회를 줘야 해요.
몰입이요?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과학이면 과학, 한 가지 일에 깊이 있게 빠져보는 경험이요. ‘덕질’이라고 하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 봐야 왜 좋은지, 몰입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마음인지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학습 목표도 생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계속 도전하고, 배워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동물을 좋아하면 ‘동물과 공존하는 일’이 목표가 됩니다. 이 목표에 닿는 방법 중 하나가 ‘수의사’인 거고요. 이렇게 목표가 생기면 아이는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합니다. 미쳐봐야 미칠 수 있다는 게 이런 겁니다.
신 교수가 말하는 '학습 목표'란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그는 "몰입한 경험이 없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그런데 학습할 땐 목표를 세워도 실천이 쉽지 않아요. 두 가지 팁을 알려드릴게요. 첫째는 ‘구체적으로 세운다’입니다. 연구 하나를 소개할게요. 미국에서 초등 5·6학년에게 작문 과제를 퇴고하게 했어요. A 집단은 ‘신중하게 보완하라’고 했고, B 집단은 ‘부족한 3가지를 찾아 보완하라’고 했어요. 그 결과 B 집단의 점수가 월등히 높았어요. ‘3가지’라는 뚜렷한 목표를 생각하면서 수정하다 보니 행동에 차이가 생긴 거죠. 학습 목표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시험에서 수학 90점을 받겠다’는 목표보다 ‘연산 문제는 다 맞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그래야 그에 맞는 학습 계획과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두 번째 팁은 뭔가요? 공부하는 이유를 성과가 아닌 성장에 두는 겁니다. 교육 심리에선 ‘숙달 목표’라 부르는데요.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를 예로 들어 볼게요. 경기 목표에 대해 김연아는 “즐기면서 타겠다”,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를 이기고 싶다”고 했어요. 전자는 목표를 ‘나의 성장’에, 후자는 ‘내 능력을 증명’하는데 둔 겁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성과만 집착하면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성장을 목표로 두면 과정에 집중하게 되고, 배움의 포인트도 찾을 수 있어요. 저절로 재밌어지죠. 그러려면 양육자가 먼저 숫자(성적)로 평가하고,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배울 내용을 미리 얘기해보고, 학습 뒤 어떤 변화가 생길지 함께 상상해보세요. 이때 목표 수행 중 겪을 어려움을 예측하면 더 좋습니다.
어려움을 미리 알려주라는 걸까요?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장애물을 함께 고려하면 현실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예를 들어 ‘지난 시험보다 점수를 높이겠다’고 목표를 세웠다면 취약 과목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많이 보는 습관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통제력이 커지면, 실수와 실패도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힘이 생깁니다.
혼공 조건 3. 정리와 문제로 공부하라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장기전이다. 신 교수는 “장기 레이스는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전략과 기술로 접근해야 완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기술은 효율적인 공부법을 말한다. 제한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꼼꼼하게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배운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때, 스스로 학습에 속도가 붙는다”고 했다.
‘학습 정리’는 누구나 할 줄 아는 것 아닌가요?제가 말하는 학습 정리란 지식을 나만의 말로 재구조화하는 걸 말합니다. 그러려면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체계화하고,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합니다. 보통 아이들은 책에 밑줄을 긋고, 선생님 말을 받아 적으면 정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복사지 정리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추가하고, 공책에 다시 정리해야 해요. 나만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적을 높이는 정리법도 있을까요?저는 숲형 정리법을 추천합니다. 숲형 정리란 내용의 구조, 개념과 개념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걸 말합니다. 줄글도 좋지만, 표나 마인드맵(개념도)을 이용해서 한 눈에 들어오게 정리하길 추천합니다. 먼저 핵심 단어를 5개 내외로 종이에 적어봅니다. 그리고는 각 단어의 관계를 점선, 화살표 등으로 구분해 표시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도식화하는 거예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각 단어의 뜻, 연관된 예시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 그 옆에 붙여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부차적으로 적어주면 지식 구조를 먼저 훑고, 관련 내용을 꼼꼼히 챙기는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한 단원을 마칠 때마다 마무리 활동으로 해보세요.신 교수는 "장기 레이스인 공부는 목표에 맞는 학습 전략과 학습법이 필요하다"며 지식 구조를 보는 '숲형' 학습법을 추천했다. 사진은 비인가 실험학교로 거꾸로 캠퍼스 학생들이 만든 마인드맵. 우상조 기자
하지만 개념 정리를 잘해도 자동으로 성적이 오르지는 않습니다.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 작업’을 거쳐야죠. ‘메타인지’라고 하죠.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저는 ‘문제 중심 학습법’을 권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기본서 문제집 한 권이면 됩니다. 정리를 마친 뒤 문제를 풀어보는데, 처음에는 많이 틀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틀린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내용을 잊어버리건 지, 잘못 이해한 건지, 기억이 왜곡된 건지요. 기억을 교정하고, 다시 문제를 푸는 과정을 반복하세요. 이때 자신의 풀이 방법을 타인에게 설명해보면 더 좋습니다. 정확히 이해하고, 기억해야만 설명할 수 있거든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출제자의 의도까지 파악하게 되고, 응용력도 생깁니다. 이렇게 기본 문제집 한 권만 완벽히 풀어도 내신에서 80점 이상은 받습니다. 초등 5학년부터는 이런 공부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학습이 시작되는 시기거든요. 그래야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거나 방황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열심히는 하는데도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취약한 부분을 찾아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학습은 위계적입니다. 기존에 내가 이해한 지식 체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내용을 쌓아서 구조화하는 게 공부거든요. 그래서 초기 학습이 허술하면 새로운 걸 배워도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반면 기초가 탄탄하면, 계속 새로운 지식이 쌓이면서 지식 체계가 확장하고요. 학습에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는 겁니다. 만약 열심히 하는데도 이해가 쉽지 않거나 실수가 잦다면 이전 학년 내용부터 다시 점검해보세요. 취약한 부분을 찾았다면 그 내용을 다시 익히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신 교수는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을 점검할 결정적 시기로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꼽았다. 학년이 오를수록 학습 격차를 줄일 기회는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의 학습 수준에 빈틈이 보인다면 거꾸로 돌아가 다시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라고 했다. 그는 “아이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이든, 학습이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 혼자서는 힘듭니다. 그 옆에 양육자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세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스스로 성장할 힘을 얻습니다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서로를 전적으로 믿으세요” 학습 주도성은 양육자와의 신뢰 속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공부하세요. 작은 성공 경험을 늘려주고, 아이의 통제력과 결정력을 믿어주세요.
·“공부 목표를 세우세요” 가야할 방향이 있어야 실천력도 생깁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게 몰입할 기회를 주세요. 목표는 구체적으로, 성과보단 과정에 집중해 목표를 정하세요.
·“정리와 문제로 공부하세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지식 구조, 개념간 관계를 볼 수 있도록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세요, 문제 풀이로 알고 모르는 건 정확히 짚고 넘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