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은 언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생각도 틀에 박히고 천박해지기 시작한다. 언어는 생각의 옷이다. 똑같은 생각도 어떤 언어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감동적인 메시지로 재탄생한다.
내가 모르는 단어만큼 내가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 다른 세계와 만나고 싶으면 타성에 젖은 언어에서 벗어나 색다른 언어로 내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낡은 언어가 인간을 마음대로 부리기 전에 ‘낯선 생각’을 ‘날 선 언어’로 끊임없이 벼리는 이유다. 언어를 벼리지 않으면 언어가 나를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