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이 있는 나라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11.04. 03:00업데이트 2023.11.04. 13:04
얼마 전 복거일 선생이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철학은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선생은 지난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의 생애를 다룬 대하 장편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1부 ‘광복’ 편 전 5권을 출간하였습니다. 제목 ‘물로 씌어진 이름’은 영국 문호 셰익스피어의 말 “사람들의 나쁜 행태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들을 우리는 물로 쓴다”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功)과 덕행은 가려지고 과(過)는 과장되는 안타까움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주최 측에서 책 출간과 강연회를 축하하는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양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선생이 좋지 않은 건강 속에서 이루어낸 업적을 진심으로 축하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축사는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에게 운이 있듯이, 회사에는 사운이 있고, 나라에는 국운(國運)이 있습니다. 특히 1949년 새롭게 탄생한 서독의 경우를 보면 드는 생각입니다. 1949년 9월 15일 서독 연방 하원에서 초대 총리로 기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가 선출되었습니다. 단 1표 차로 경쟁자 사민당의 쿠르트 슈마허를 물리쳤습니다. 아데나워도 자기에게 투표했을 테니, 결국 자기 표로 당선된 셈입니다. 그 1표가 독일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아데나워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친미, 친서방의 외교·국방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유럽 재건을 위한 미국의 마셜 계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점령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아데나워 못지않게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치인인 슈마허는 사회민주주의와 중공업 국유화 및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친서방이나 친소련이 아닌 중립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미국의 마셜 계획을 미 제국주의의 위장이라고 비난하고 가톨릭 단체를 점령 4국에 이은 제5의 점령 단체라고까지 폄하하였습니다. 동독에 대한 관계에서도, 아데나워는 서방과의 결속과 ‘힘 우위의 정책’을 기반으로 동독을 흡수, 소멸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동독 정부는 서독과는 달리 온 국민이 참여한 총선거에 의하지 않고 소련 공산당의 지령에 의하여 만들어진 정통성이 없는 정부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하여 슈마허는 아데나워의 발상은 독일 기본법의 정신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분단의 극복이 아니라 분단의 고착을 가져올 뿐이라며, 서방 의존보다는 민족적 일체성을 강조하며 동독의 주체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아데나워와 슈마허의 정책에는 이처럼 극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누가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모습은 완전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데나워의 1표 차 총리 당선은 독일의 행운이었습니다. 아데나워는 ‘전략’과 ‘실용’을 바탕으로 친서방 경제, 외교, 군사 정책을 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경제 부흥, 국제 신뢰 회복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슈마허가 총리로 선출되었다면 독일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사민당도 아데나워가 상당 부분 옳았음을 인정하고 1959년 고데스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친서방,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하기에 이릅니다.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계급정당에서 온 국민을 품어 안는 국민 정당으로 변모합니다.
우리나라도 ‘국운이 있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 아데나워 총리와 비슷한 경험, 경륜과 정치적 비전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 동맹에 의한 안전보장, 사회적 연대를 위한 농지 개혁과 초등학교 의무교육 등입니다. 이런 정책을 출발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선진 경제 국가로 발전하여 국민은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으나, 다른 길을 간 북한은 세계 최빈국에 속하고 주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의 출발점이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철학입니다.
복거일 선생은 강연에서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대공국 이래 안으로는 압제적이고 밖으로는 탐욕스럽고 팽창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이러한 전통은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꿰뚫어 보아 공산주의 위협을 통찰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간 정치 지도자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