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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작가는 왜 ‘나만의 正義’를 경계했나 .. 어수웅

notaram 2023. 6. 14. 12:20

이제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을 왜 제목에서 인용했는지 이야기할 때다. 그는 애플TV+ 드라마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파친코’의 원작자. 부산 영도의 딸이었던 주인공 선자가 일제강점기에 오사카·도쿄 등지로 옮겨가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4대(代)의 핏줄 서사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행사에 참석한 작가는 이런 고백을 했다. 15년 동안 쓴 초고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는 것. “미국에서 예일대를 다니던 시절, 나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다 자살한 일본 중학생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분노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나중에 결혼해서 일본을 찾은 뒤 재일 교포 할머니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깨달았다. 종전에 썼던 내 원고가 끔찍했다는걸. 너무 교훈적이고, 분노가 가득했고, 나만의 정의만 녹아 있었다.”

그는 ‘나만의 정의’라는 표현을 썼다. 인간은 잔혹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는 이중적 존재. 일본과 미국에서 겪은 차별, 그리고 소수민족의 분노만으로 장편소설을 완성했다면 소위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의 지지가 있었을까. 나는 작가가 혼자만의 정의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양쪽 독자를 모두 설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상은 악이 아니라 정의라는 명제가 있다. 악에는 죄책감이 따라오지만, 정의에는 그조차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제어 수단이 없다. 다들 정의만 있으면 상대방에게 무슨 상처를 입혀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화 예술의 PC 강박도 마찬가지. 과도한 강박적 PC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고 문화적으로도 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