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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엔 경제학 아버지, 당대엔 비주류 지식인
입력2023.06.10. 오전 12:21 수정2023.06.10. 오전 2:49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한국경제신문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계몽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이들은 왕의 권력이 신에게서 받은 것이란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절대왕정에 도전했다. 영국의 존 로크,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 등이 대표적 계몽주의 사상가였다. 특히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됐다.
섬나라 영국의 사정은 대륙의 프랑스와 달랐다. 영국은 ‘명예혁명’이란 비교적 온건한 방법으로 전제군주제와 결별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그런데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확산의 혜택을 모든 영국인이 고르게 받은 건 아니었다. 브리튼 섬 남부의 잉글랜드와 그 외 지역의 격차는 그때도 컸고 지금도 여전히 크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스코틀랜드도 비주류에 속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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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림부터 애덤 스미스, 그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던 계몽주의 사상가 데이비드 흄, 어머니 마거릿 스미스. [사진 한국경제신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수십년간 역사학을 가르친 저자는 스미스의 생애와 사상을 18세기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조명한다. 저자가 보기에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스코틀랜드 사람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내며 당대의 지식인들과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중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데이비드 흄도 있었다. 도덕의 기초를 공감(sympathy)에서 찾은 흄의 사상은 19세기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로 이어졌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했던 개념도 공감이었다.
올해는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맞는 해다.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 도시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생일은 6월 5일로 알려졌지만 확실치 않다. 스미스의 아버지는 신흥 지주층인 젠트리 계급에 속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으나 귀족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 애덤 스미스가 태어나기 5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아들 스미스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종교적으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집안이었다. 종교 갈등이 극심했던 영국에서 종교는 스미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종교개혁 이후에 나온 개신교란 점은 같아도, 영국 사회 주류인 국교회(성공회)와 비교하면 비주류에 속했다. 현재는 ‘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스미스는 생전에는 출신 지역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비주류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돈 많은 중산층이 대개 그렇듯이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스미스는 열네 살 때부터 9년 간 대학을 다녔다. 첫 3년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 이후 6년은 잉글랜드의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스미스의 옥스퍼드 생활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록이 없다. 다만 스미스처럼 스코틀랜드 출신이면서 장로교도인 학생에게 옥스퍼드는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미스는 스물세 살 때 옥스퍼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그에게 필요한 건 후원자와 일자리,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교우 관계였다. 이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해준 게 데이비드 흄과 그의 사촌 헨리 홈이었다. 스미스는 3년간 에든버러대에서 수사학과 법학을 강의한 데 이어 글래스고대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맡는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스미스는 경제학 연구에 일생을 바친 사람은 아니다. 스미스의 주 전공은 철학, 그중에서도 도덕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도덕적 감정’(moral sentiments)에 대한 그의 생각을 총정리한 책이 『도덕감정론』이다. 서른여섯 살에 초판을 낸 이후 죽기 전까지 여섯 번이나 고쳐 쓸 만큼 애정을 쏟았다.
『도덕감정론』으로 명성을 얻은 스미스는 파격적 연봉을 제안받고 귀족 자녀의 가정교사를 맡았다. 이렇게 대학교수를 그만둔 그는 제자와 함께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스위스·독일을 여행한 스미스는 당시로선 진보적 사상인 계몽주의에 흠뻑 빠졌다. 아직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던 스미스는 “흉상까지 모셔놓을 정도로 볼테르를 존경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스미스는 쉰세 살에 국부론』 출간했다. 그는 책에서 보수 기득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상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대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후대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은 두꺼운 책에서 단 한 번만 나온다.
스미스는 예순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강의 노트와 개인 편지 등을 대부분 폐기했다. 그래서 스미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남은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되,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정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스미스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저자의 꼼꼼한 자료 수집과 분석은 높이 살 만해도, 근대 산업혁명 시기 영국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독자라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21세기 한국 독자에겐 300년 전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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